11월8일 주(속회 공과)
*제목: 나의 생각과 하나님 생각
*성경: 겔 36:37-38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겸양의 덕이 있어서, 상대방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할 때' 속으로는 먹고 싶으면서도 일단은 두 서너 번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합니다. 그런데 만일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정말 괜찮은 줄 알고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으면 굉장히 섭섭해합니다. 실제는 배가 고픈데 '괜찮다고 말함으로써' 배고파서 혼나는 경우도 종종있습니다.
교회에서 연말에 계획을 세울 때도 담임목사가 이것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연세가 많은 교인의 경우 내년을 위해 '직분'을 맡기려 하면 처음에는 대부분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이때 담임자가 그 교인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지 아니면 겸양을 나타내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본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임명장을 냈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담임목사님이 나를 인정하시는 구나"하고 좋아하는 경우가 있고, "임명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임명했느냐"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우리와 같은 경우가 거의 없답니다. 먹고 싶으면 달라고 하고, 먹기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서양이 주로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자 합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다른 것 중에 한가지가 '기도'할 때의 태도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에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겸양의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내가 너를 구원해 주랴?' '내가 너에게 축복을 주랴?' '내가 네게 응답을 주랴?'라고 물으시면, 성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무슨 받을 자격이 있나요, 면목이 없습니다" "안 주셔도 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말하기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입장과 한국이 성도들의 입장이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해야 주신다'는 것이고, 성도들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다 주시길 바란 다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간절히 바라면서도 실제 하나님 앞에서는 '구하지 안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말씀처럼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다 내셨습니다. 준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 자신이 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에게만 있지 성도에게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만일 구하지 않아도 주신다고 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알아서 다 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정한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한 방식과 약속하신 것에 기초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서양 사람들이 '구하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인격을 존중해서 절대로 주지 않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배운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아파 죽겠는데고 하나님에게 나와서 고쳐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 없어 죽겠는데도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친구에게 가서는 돈을 꾸어 달라고 할지언정 하나님께 와서는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가 바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어린 자식은 아버지를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다.(우리 모두는 어린 신앙인) "아빠, 돈 줘'이렇게 말합니다. 맡겨 놓은 것처럼 말합니다. 아빠는 당연히 줘야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유를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요한일서 5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잘 못 구하면 어떻게 되나'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기도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우리가 마치 완전한 '성자'처럼 일생을 하나님 뜻에 따라서만 구할 수 있겠습니까? 실수로 잘못도 구해 보고, 정신차려 잘 구해 보기도 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응답 받아 보면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엎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믿고 구하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 구해도 '그대로 응답 주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안타깝지만 우리 인간 아버지(다윗에게 한 약속)와 같이 결과적으로 자식에게 손해가 간다해도 믿고 달라고 하면 응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등학생 아들이 오토바이를 사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합니다. 공부해야 할 학생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사 달라고 하면 사 줍니다. "너 후회 할 것이다. 네가 알아서 잘 한다고 하니, 아빠가 사주기 사 준다. 그러나 나중에 아빠가 오토바이 사줘서 공부 못해서 대학 못갔다고, 나 원망하지 마라" 이런 식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예가 사무엘상 8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처럼 '왕'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안 된다고 설득합니다. 응답 받고 나서 후회 할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은 막무가네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면서도 '믿고 구하면 준다'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자신들이 '고통을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구하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셨습니다. 기도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결국 바로 기도해서 영혼이 건강해 지느냐, 파리해 지느냐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시106:15) 기도하면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도 저도 없습니다.
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36:38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생각할 점: 성도들이 기도할 제목이 있으면서도 구하지 않는 이유를 서로 고백해 봅시다. 그리고 합심하여 두 사람이 구하면 응답 주신다 했으니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한 주간 동안 기도해 봅시다.
*제목: 나의 생각과 하나님 생각
*성경: 겔 36:37-38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겸양의 덕이 있어서, 상대방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할 때' 속으로는 먹고 싶으면서도 일단은 두 서너 번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합니다. 그런데 만일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정말 괜찮은 줄 알고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으면 굉장히 섭섭해합니다. 실제는 배가 고픈데 '괜찮다고 말함으로써' 배고파서 혼나는 경우도 종종있습니다.
교회에서 연말에 계획을 세울 때도 담임목사가 이것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연세가 많은 교인의 경우 내년을 위해 '직분'을 맡기려 하면 처음에는 대부분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이때 담임자가 그 교인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지 아니면 겸양을 나타내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본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임명장을 냈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담임목사님이 나를 인정하시는 구나"하고 좋아하는 경우가 있고, "임명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임명했느냐"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우리와 같은 경우가 거의 없답니다. 먹고 싶으면 달라고 하고, 먹기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서양이 주로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자 합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다른 것 중에 한가지가 '기도'할 때의 태도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에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겸양의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내가 너를 구원해 주랴?' '내가 너에게 축복을 주랴?' '내가 네게 응답을 주랴?'라고 물으시면, 성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무슨 받을 자격이 있나요, 면목이 없습니다" "안 주셔도 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말하기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입장과 한국이 성도들의 입장이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해야 주신다'는 것이고, 성도들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다 주시길 바란 다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간절히 바라면서도 실제 하나님 앞에서는 '구하지 안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말씀처럼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다 내셨습니다. 준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 자신이 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에게만 있지 성도에게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만일 구하지 않아도 주신다고 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알아서 다 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정한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한 방식과 약속하신 것에 기초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서양 사람들이 '구하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인격을 존중해서 절대로 주지 않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배운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아파 죽겠는데고 하나님에게 나와서 고쳐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 없어 죽겠는데도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친구에게 가서는 돈을 꾸어 달라고 할지언정 하나님께 와서는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가 바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어린 자식은 아버지를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다.(우리 모두는 어린 신앙인) "아빠, 돈 줘'이렇게 말합니다. 맡겨 놓은 것처럼 말합니다. 아빠는 당연히 줘야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유를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요한일서 5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잘 못 구하면 어떻게 되나'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기도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우리가 마치 완전한 '성자'처럼 일생을 하나님 뜻에 따라서만 구할 수 있겠습니까? 실수로 잘못도 구해 보고, 정신차려 잘 구해 보기도 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응답 받아 보면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엎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믿고 구하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 구해도 '그대로 응답 주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안타깝지만 우리 인간 아버지(다윗에게 한 약속)와 같이 결과적으로 자식에게 손해가 간다해도 믿고 달라고 하면 응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등학생 아들이 오토바이를 사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합니다. 공부해야 할 학생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사 달라고 하면 사 줍니다. "너 후회 할 것이다. 네가 알아서 잘 한다고 하니, 아빠가 사주기 사 준다. 그러나 나중에 아빠가 오토바이 사줘서 공부 못해서 대학 못갔다고, 나 원망하지 마라" 이런 식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예가 사무엘상 8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처럼 '왕'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안 된다고 설득합니다. 응답 받고 나서 후회 할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은 막무가네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면서도 '믿고 구하면 준다'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자신들이 '고통을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구하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셨습니다. 기도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결국 바로 기도해서 영혼이 건강해 지느냐, 파리해 지느냐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시106:15) 기도하면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도 저도 없습니다.
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36:38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생각할 점: 성도들이 기도할 제목이 있으면서도 구하지 않는 이유를 서로 고백해 봅시다. 그리고 합심하여 두 사람이 구하면 응답 주신다 했으니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한 주간 동안 기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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