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8일 주(속회 공과) 속회공과(설교)

11월8일 주(속회 공과)
*제목: 나의 생각과 하나님 생각
*성경: 겔 36:37-38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겸양의 덕이 있어서, 상대방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할 때' 속으로는 먹고 싶으면서도 일단은 두 서너 번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합니다. 그런데 만일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정말 괜찮은 줄 알고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으면 굉장히 섭섭해합니다. 실제는 배가 고픈데 '괜찮다고 말함으로써' 배고파서 혼나는 경우도 종종있습니다.
 교회에서 연말에 계획을 세울 때도 담임목사가 이것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연세가 많은 교인의 경우 내년을 위해 '직분'을 맡기려 하면 처음에는 대부분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이때 담임자가 그 교인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지 아니면 겸양을 나타내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본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임명장을 냈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담임목사님이 나를 인정하시는 구나"하고 좋아하는 경우가 있고, "임명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임명했느냐"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우리와 같은 경우가 거의 없답니다. 먹고 싶으면 달라고 하고, 먹기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서양이 주로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자 합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다른 것 중에 한가지가 '기도'할 때의 태도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에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겸양의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내가 너를 구원해 주랴?' '내가 너에게 축복을 주랴?' '내가 네게 응답을 주랴?'라고 물으시면, 성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무슨 받을 자격이 있나요, 면목이 없습니다" "안 주셔도 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말하기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입장과 한국이 성도들의 입장이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해야 주신다'는 것이고, 성도들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다 주시길 바란 다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간절히 바라면서도 실제 하나님 앞에서는 '구하지 안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말씀처럼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다 내셨습니다. 준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 자신이 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에게만 있지 성도에게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만일 구하지 않아도 주신다고 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알아서 다 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정한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한 방식과 약속하신 것에 기초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서양 사람들이 '구하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인격을 존중해서 절대로 주지 않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배운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아파 죽겠는데고 하나님에게 나와서 고쳐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 없어 죽겠는데도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친구에게 가서는 돈을 꾸어 달라고 할지언정  하나님께 와서는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가 바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어린 자식은 아버지를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다.(우리 모두는 어린 신앙인) "아빠, 돈 줘'이렇게 말합니다. 맡겨 놓은 것처럼 말합니다. 아빠는 당연히 줘야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유를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요한일서 5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잘 못 구하면 어떻게 되나'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기도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우리가 마치 완전한 '성자'처럼 일생을 하나님 뜻에 따라서만 구할 수 있겠습니까? 실수로 잘못도 구해 보고, 정신차려 잘 구해 보기도 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응답 받아 보면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엎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믿고 구하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 구해도 '그대로 응답 주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안타깝지만 우리 인간 아버지(다윗에게 한 약속)와 같이 결과적으로 자식에게 손해가 간다해도 믿고 달라고 하면 응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등학생 아들이 오토바이를 사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합니다. 공부해야 할 학생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사 달라고 하면 사 줍니다. "너 후회 할 것이다. 네가 알아서 잘 한다고 하니, 아빠가 사주기 사 준다. 그러나 나중에 아빠가 오토바이 사줘서 공부 못해서 대학 못갔다고, 나 원망하지 마라" 이런 식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예가 사무엘상 8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처럼 '왕'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안 된다고 설득합니다. 응답 받고 나서 후회 할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은 막무가네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면서도 '믿고 구하면 준다'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자신들이 '고통을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구하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셨습니다. 기도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결국 바로 기도해서 영혼이 건강해 지느냐, 파리해 지느냐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시106:15) 기도하면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도 저도 없습니다.  

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36:38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생각할 점: 성도들이 기도할 제목이 있으면서도 구하지 않는 이유를 서로 고백해 봅시다. 그리고  합심하여 두 사람이 구하면 응답 주신다 했으니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한 주간 동안 기도해 봅시다.


11월1일 주(속회 공과) 속회공과(설교)

*알림: 담임목사가  카자흐스탄 선교를 가기 때문에 2 주 분량의 공과를 올립니다.  잘 확인하시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11월1일 주(속회 공과)
*제목: 영적생활
*성경: 슥 4:6
 신앙생활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인 생활입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혼의 부분을 우리는 흔히 자아라고 합니다. 이 자아를 중심으로 영이 혼의 안에 들어 있고, 육이 혼의 밖에 붙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겉 사람 속 사람으로 표현했습니다. 영이 속 사람이고 육이 겉 사람입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중에 한 가지만 빠져도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균형입니다. 우리의 혼(자아)이 너무 육체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범죄하고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으면서 시작된 습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에 영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헬스를 해서 근육만 많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이 바로 박혀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고 공부 많이 해서 유식하고 정신력만 강하다고 해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을 지배하는 영이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완전해도 영(얼)이 빠지면 끝납니다.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균형 있고 질서가 잡힌 사람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영과 혼과 육의 균형이 깨진 인간이 괴물입니다. 최근 人面獸心(인면수심)의 범죄자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은 짐승과 같습니다. 반면 영의 소원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사람이 육체가 하자는대로 만하면 짐승과 같아집니다. 반대로 사람이 영이 하자는대로 하면 천사와 같아집니다. 각 사람의 자아가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세상은 줄곳 육체를 편들고, 육체가 하자는대로 자아(정신과 감정과 의지)가 가도록 유혹합니다. TV, 신문, 잡지, 거리의 광고판이 온통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육체를 유혹하는 것들뿐입니다. 육체가 만족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라고 부축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자아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육체가 하자는 대로 하면 그것이 곧 범죄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정 반대입니다.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영의 존재를 알리고, 자아가 영에게 협력해야 될 것을 가르칩니다. 각각의 사람은 자기 속에서 영의 역할과 능력을 강화시키고, 영이 자아와 육체를 지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영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지상에서 유일한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하고, 영의 생명력 강화를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일은 최종적으로 영적인 차원에서 결판이 납니다. 결국은 악령과 성령의 싸움에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분쟁이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이것을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이 살아나면 성령과 연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절대로 혼자 일하지 말고 보혜사 성령과 함께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모든 신앙생활 즉 영적 생활의 비밀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성령 받으시기 바랍니다.

슥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영적생활 매일설교

영적생활
-슥 4:6
(*알림: 제가 오늘부터 다음 주 수요일 까지 카자흐스탄 선교갑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설교 자료를 올릴 수 없습니다. 헛걸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인 생활입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혼의 부분을 우리는 흔히 자아라고 합니다. 이 자아를 중심으로 영과 육이 양옆에 붙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영이 혼의 안에 들어 있고, 육이 혼의 밖에 붙어 있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겉 사람 속 사람으로 표현했습니다. 영이 속 사람이고 육이 겉 사람입니다.
 우리의 자아인 혼은 마음이라는 바탕 위에 知情意(지정의)라는 요소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생명이 더해지면 살아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중에 한 가지만 빠져도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균형입니다. 우리의 혼(자아)이 너무 육체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범죄하고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으면서 시작된 습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에 영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특별히 근대 과학이란 학문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영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람들이 영에 관해서 말하면 상상의 산물인양 비웃었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헬스를 해서 근육만 많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이 바로 박혀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고 공부 많이 해서 유식하고 정신력만 강하다고 해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을 지배하는 영이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이 바로 된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영을 세상 말로 얼이라고도 하는데, 얼이 빠져나간 것같이 보이면 '얼빠졌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완전해도 얼이 빠지면 끝납니다.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균형 있고 질서가 잡힌 사람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주가 건강한 것은 이 균형과 질서가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별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깨진다면 공전과 자전의 궤도가 무너지며 즉시 멸망이 올것입니다.
 영과 혼과 육의 균형이 깨진 인간이 괴물입니다. 최근 人面獸心(인면수심)의 범죄자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은 짐승과 같습니다. 반면 영의 소원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사람이 육체가 하자는대로 만하면 짐승과 같아집니다. 반대로 사람이 영이 하자는대로 하면 천사와 같아집니다. 각 사람의 자아가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세상은 줄곳 육체를 편들고, 육체가 하자는대로 자아(정신과 감정과 의지)가 가도록 유혹합니다. TV, 신문, 잡지, 거리의 광고판이 온통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육체를 유혹하는 것들뿐입니다. 육체가 만족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라고 부축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자아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육체가 하자는 대로 하면 그것이 곧 범죄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정 반대입니다.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영의 존재를 알리고, 자아가 영에게 협력해야 될 것을 가르칩니다. 각각의 사람은 자기 속에서 영의 역할과 능력을 강화시키고, 영이 자아와 육체를 지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영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지상에서 유일한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하고, 영의 생명력 강화를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일은 최종적으로 영적인 차원에서 결판이 납니다. 결국은 악령과 성령의 싸움에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분쟁이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이것을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이 살아나면 성령과 연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절대로 혼자 일하지 말고 보혜사 성령과 함께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모든 신앙생활 즉 영적 생활의 비밀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성령 받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절대로 혼자 일하려고 하지말고, 혼자 신앙생활하려 하지말고, 성령받고 성령과 함께 일하시길 바랍니다.

슥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에 대해서 알라 매일설교

성령에 대해서 알라
-고전12:1-11
 사람은 영과 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영혼이라고 붙여서 읽거나 말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영을 소홀히 생각해서 마치 영이 혼에 붙어 있는 일종의 부속품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영, 혼, 육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영이 잘되어야 혼이 잘되고, 육체도 잘되고,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즉 범사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자신을 自我(자아)라고 말하고 혼이라고 표현 말합니다. 혼은 知情意(지정의)로 구성되어 있고, 마음이라는 바탕에 놓여 있습니다.
 혼을 자아라고 할 때, 혼은 매 순간 주로 육체 쪽을 향해 있습니다. 마음은 육체에만 신경을 써줍니다. 좀더 자자 좀더 눕자,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육체의 요구는 한이 없습니다. 자아는 이 육체의 뒷바라지하는데 일생을 다 씁니다. 자아는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이런 육체적인 관심으로 봅니다. 눈이 크다. 날씬하다. 키가 크다. 옷걸이가 좋다. 좋은 집에 산다. 좋은 차를 산다.
 우리의 내부를 보면 자아를 사이에 두고 영와 육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내가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 속에서 두 자아(법)이 싸운다고 했습니다. 어떤 인디언은 두 마리의 늑대가 사람 속에서 싸운 다고 했습니다. 첫 아담 때부터 자아가 육체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아가 육체의 편을 드는 형태로 태어납니다. 육체는 온전한데다가 배후에 마귀의 세력이 비호해 주고 있기 때문에, 아주 거만하고 거들먹거립니다. 자아가 한 번 자신의 육체에 휘둘리게 되면 그 사람은 마치 깡패에게 약점 잡힌 술집 주인처럼 평생 정신을 못차리고 육체만 뒷바라지 하다가 인생 끝납니다.  
 사람의 영은 아담의 원죄로 태어날 때부터 회생이 거의 불가능한 불구로 태어납니다. 본래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데다가, 존래 가져야 할 '힘'의 근원 즉 생명력의 근원인 성령도 없이 태어납니다. 영이라는 것이 각각의 사람에게 있기는 있는데 겨우 혼에 붙어 있어서 뇌사 상태가 된 사람이 중환자 실에서 마치, 가족들이 돈을 대고, 간호사가 꼽아주는 링거에 의지해서 목숨만 유지하는 정도의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과 '혼' 따로 분리되어서 소개되지 못하고, 영혼으로 붙어서 소개되는 것입니다. 언어 자체 속에 이미 영이 혼에 붙어서 겨우 살아 숨만 쉬는 정도로 만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렇게 붙여서 말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가장 먼저 가르치시려고 한 것이 '영'의 존재와 '영'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이 잘되려면 우선 영이 본래 갖추어야 할 요소를 되찾아 제대로 구성해 놓아야 합니다. 인간의 영속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인간의 영은 마치 엔진이 빠진 자동차와 같습니다. CPU가 빠진 컴퓨터와 같습니다. 형체만 있지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인간의 영은 마치 기름이 없어서 시동을 걸 수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동력이 없는 것입니다. 전기 코드가 빠진 컴퓨터와 같습니다. 영이 혼과 육체를 지배하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려면 반드시 영을 살려내야 합니다.
 첫 째 사람의 영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가지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일장에 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이 영접됩니다. 예수님이 떠나면 하나님의 형상도 떠납니다.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에서 접붙임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방법말고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만 구원받는 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물론 대속의 문제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대속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다시 죄를 지으면 다시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형상 자체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하고 전혀 무관한 존재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대속이 무의미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 째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대부분은 성령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이 없는 영을 가진 인간은 그 자체가 모순 덩어리입니다. 마치 종이 주인을 부려먹는 것같은 형국입니다. 영이혼을 지배하고, 혼이 육체를 지배하고, 육체는 쳐서 복종시켜야 될 대상인데, 꺼꾸로 육체가 세도를 부리고 혼이 쩔쩔매고, 영은 혼수 상태로 침대에 누어 있는 것과 같은 사람이 되었니 한 가지도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마치 6.25 전쟁 때 집안에서 부리던 머슴들이 반란을 일으켜 주인의 재산을 탈취하고, 주인을 구타하여 뇌사 상태를 만들고 집안의 지배자가 되고 큰 소리치며 세도를 부리는 형국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고, 성령을 모셔서 영이 강력한 힘을 얻게 되면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셨던 '영적 위계질서'가 바로 잡힌 성도가 됩니다. 성도란 이렇게 영적인 위계질서가 바로 잡힌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성령은 불완전한 인간이 흠도 티도 없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사람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성령은 전능하신 신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르게 부족한 것을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보헤사(돕는자)입니다. 스스로 일하시기 보다. 사람들이 완전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부족함을 보충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9가지 정도의 대표적인 은사가 소개되었만 사실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시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 자아의 눈은 내버려두어도 가제미 눈처럼 육체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눈을 돌려야 영쪽을 바라 봅니다. 영의 상태에 신경을 쓸 수 있습니다. 육체도 신경을 조금 안써주면 머리가 엉망이 되고, 눈꼽이 끼고, 입술에 무엇이 묻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집니다.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아가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풀이 죽고, 나약해 지고, 심지어 가사 상태가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가 자신의 영에게 전혀 신경을 안 써줍니다. 육체에게 시간을 다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가 좋아서 흥얼거리는 찬송은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싶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입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세상에서 등을 돌리고 자신의 영과 영적인 하나님과 그 나라를 바라 봐야 합니다.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것이 경건의 훈련입니다.
 수도원 중에는 '폐쇄 수도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세상을 완전히 등지고, 한 번 들어가면 죽은 시체로 세상에 나오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서로에게도 침묵하고 하나님과만 대화합니다.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자기 먹을 것을 위해서 단순 노동하고, 하루에 5번내지 10번을 예배드립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자'입니다.
 우리는 세속에 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순간순간 등지고 영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예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요한 웨슬레 어머니 수산나는 16명의 자식을 낳아 길렀다고 합니다. 왠만한 교회의 주일학교 숫자이며, 산골 초등학교 전교생 숫자입니다. 그 애들 뒷바라지에 하루 종일 눈코 뜰 새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쁜 중에도 그녀는 순간순간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과 자신의 영을 바라보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수산나는 집안에서 기도하고 싶을 때 자신의 겉치마를 자루를 뒤짚어 쓰듯이 뒤짚어 썻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치마를 뒤짚어 쓰면 기도하는 것인 줄 알고 조용히 했답니다. 엄마의 이런 행동은 자녀들에게 무언의 신앙교육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2명의 자녀를 둔 엄마가 시간이 없어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말을 할 때, 하나님은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산나가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내일은 성경 읽기를 통해서 어떻게 영적을 강하게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언약과 내용 매일설교

언약과 내용
-수 2:15-21
 언약에는 내용이 있습니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군 2명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정탐군들은 보답으로 라합을 구원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약속의 내용입니다. 붉은 줄이 내려져 있는 집을 라합의 집으로 알고 그 속에 누가 있던지 다 살려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후 실제 여리고성의 점령 전쟁이 있었고, 라합은 약속대로 자신의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놓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서로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라합이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놓지 않았었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던 마지막 날도 이와 유사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전역에 가장 무서운 재앙을 내리겠다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죽음의 사자'가 볼 수 있도록 출입문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집은 재앙을 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믿는 자를 위해서는 솟아날 구멍 하나는 만들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날 밤 그 약속대로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둔 집안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심판의 천사들이 그 약속의 붉은 피를 보고 그 집을 지나갔습니다.
 광야 시대에도 이런 약속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하여 불뱀의 떼에게 공격당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꼼짝도 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롯뱀을 장대에 매달이 하늘 높이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롯 뱀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해독이 되어 살아나리라". 이것이 약속의 내용입니다. 믿고 롯 뱀을 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보지 않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언약에는 그 내용이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내용 없는 약속은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약속은 무효입니다. 예를 들어서 두 사람이 서울 광화문 지하철역 4번 출구에서 월요일 오전 10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고 칩시다. 정신이 없어서 장소를 잊어 버렸습니다. 날짜와 시간을 잊어 버렸습니다. 전혀 생각이 안납니다. 한 사람은 제시간에 그 장소에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이 안 왔습니다. 그 약속은 무효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온전한 신앙을 강조할 때 사람들은 부담감을 느낍니다. 이 온전함이란 무엇입니까? 약속에 대한 온전함입니다. 약속의 당사자간에 정확한 내용을 서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틀림이 없습니다. 일점일획도 떨어짐이 없이 지키십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부문에 대해서 약속을 해 두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이 일일이 개인적을 하나님께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사람도 성가시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성경에 아예 그 내용을 기록하여 공개해 버렸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내용을 읽고 그대로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죄를 하나님에게서 용서받고 싶으면 남이 자신에게 지은 죄를 용서하면 됩니다. 그러면 용서받을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만일 자신은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자신의 죄만 하나님께 용서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월요일에 약속을 해 놓고, 목요일에 약속 장소에 나가 상대방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구약'과 '신약' 즉 약속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약속을 중심으로 읽고, 그 약속에 대해서 하나님과 성도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살펴 보시면 성경의 내용이 제대로 읽혀질 것입니다.   

수 2:15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2:1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 2:17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2: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2:19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20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2:21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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